"그때 분명히 그랬잖아!" — 우리가 기억을 잘못 믿는 이유
어릴 적 친구와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이 있다. 친구가 나를 밀었고, 나는 넘어져 무릎을 다쳤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그때 함께 있었던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미끄러졌잖아, 내가 밀지 않았어.”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나는 분명 친구가 밀었다고 기억하고 있는데, 친구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이런 경험,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과거의 기억이 서로 다르게 남아 있는 것. 사실 이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거짓 기억’이라고 부른다. 오늘은 거짓 기억 증후군 기억은 왜 조작될까? 에 대해서 우리 기억이 얼마나 쉽게 바뀌고, 왜 없는 기억을 믿게 되는지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억은 저장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
사람들은 흔히 기억을 사진이나 영상처럼 뇌 어딘가에 저장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기억은 그때그때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에 가깝다. 사건이 벌어진 직후, 우리의 뇌는 그 상황과 감정을 기억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고 빈틈이 생긴다.
문제는 이 빈틈을 뇌가 그냥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뇌는 과거 경험, 주변 사람의 말, 뉴스, 영화, 심지어 지금 내 기분까지 동원해 그 틈을 메우려 한다. 그러다 보면 같은 사건을 두고 사람마다 기억이 달라지기도 하고, 심지어 실제로 없던 일도 있었던 것처럼 믿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감정과 주변 상황이 기억을 바꾼다
기억이 조작되는 데 있어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건 감정과 주변 사람들이다. 특히 감정이 강하게 남는 사건일수록 그때의 느낌은 또렷하지만, 상황이나 사실 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왜곡되기 쉽다.
예를 들어, 어릴 적 길을 잃었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당시 느꼈던 공포는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런데 나중에 가족에게 물어보니 실제로는 부모님이 바로 옆에 있었고, 울지도 않았다고 한다. 당시 느꼈던 강렬한 감정이 기억을 부풀리고 왜곡해버린 것이다.
또한 주변 사람이 자꾸 얘기해주는 내용도 큰 영향을 미친다. “너 그때 진짜 넘어졌었잖아”, “그날 엄청 울었잖아”라는 말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처음에는 헷갈리다가도 어느 순간 ‘아,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 이야기가 마치 내가 직접 겪은 일처럼 자연스럽게 기억 속에 자리 잡는다.
이렇게 주변인의 암시와 반복적인 이야기, 미디어의 영향 역시 기억 왜곡의 주요 원인이 된다. 영화에서 본 장면이나 뉴스에서 들은 이야기, 친구의 말을 듣다 보면 어느새 그것이 자신의 경험처럼 뒤섞여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일상 속 거짓 기억, 그리고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
이런 거짓 기억은 생각보다 자주, 그리고 쉽게 일어난다. 시험이 끝난 뒤 친구랑 답을 맞춰볼 때 “야, 이거 2번이었잖아” 하면, 원래 3번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갑자기 “아… 그랬나?” 하고 헷갈리게 된다. 그리고 몇 번 그렇게 말이 오가다 보면 나중에는 진짜 2번이라고 믿게 되기도 한다.
조금 더 심각한 경우도 있다. TV나 영화에서 본 장면, 뉴스에서 들은 이야기, 또는 누군가의 말을 듣다가 그걸 마치 자신이 겪은 일처럼 기억하는 경우다. 그리고 이런 기억 때문에 실제 사건이 잘못 판단되거나, 사람 사이의 오해가 깊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상담 과정에서, 실제로는 없었던 일들을 기억해내고 그것을 토대로 가족이나 지인을 범죄자로 오해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런 사례들은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쉽게 바뀌고, 유연하며, 때로는 전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래서 기억이라는 건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고, 우리는 그걸 맹신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 “분명 그랬어”라고 말해도, 어쩌면 그 기억이 감정이나 암시에 의해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기억은 진실보다 이야기다
우리가 믿는 기억은 사실 진실이라기보다 이야기다. 감정, 상황, 주변인의 말, 시간의 흐름이 그 이야기를 조금씩 바꾸고, 우리는 그걸 믿으며 살아간다. 그러니 과거의 기억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거나,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누구나 기억을 왜곡하고, 없는 기억을 만들어가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나의 선택과 태도다.
가끔은 기억을 너무 믿지 말고, 그때의 마음을 더 기억해보자. 그러면 조금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